전 제5황자의 매장금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 이야기라고 해.
아니, 그 전초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까마득히 오래전, 2천 수백 년 전에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전설적인 황자 경연이 열렸어.그건 열국에 처음으로 여성 황제가 탄생한 역사적인 경연이었지. 당시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천지가 뒤집힐 만큼 충격적이었겠지만, 동시에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여러 가지 일어난 이례적인 경연이기도 했어.
하나, 당시 존재했던 영력을 가진 여인들로 구성된 ‘신녀궁’의 주신녀가 경연 중에 사망한 일.
둘, 43대 황자 경연의 황자가 새 황제의 황후가 된 일.
셋, 그 다음 44대 황자 경연에 그 황후가 황제의 입양로 참가해 황제가 된 일.
첫 번째는 영원한 수수께끼에 싸인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두 번째, 특히 세 번째는 아무리 생각해도 희극이야. 그런 건 싫지 않지만 말이야.
자, 그런 기상천외한 사건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포함한 하층민들에게는 이미 지나가 버린 바꿀 수 없는 과거보다 더욱 흥미를 자극하는 소문이 있어.
그건 바로 제43회 황자 경연 제5황자의 매장금이야.
제43회 황자 경연에서는 역대 어느 때보다 많은 황자들이 최종 경연까지 남았다고 해. 황위에 오른 제4황자(앞서 말했듯이 남장한 여성이었지), 당시 황제의 친자인 제1황자, 제1황자에게 그 자리를 빼앗긴 비운의 제2황자, 마지막 경연에서 목숨을 잃은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던 제7황자, 성격이 거친 제8황자, 소심했던 제20황자.
그리고 가장 비옥한 재산을 가진 나한각에 속했던, 한 눈에 눈길을 끄는 갈색 피부의 제5황자야.
그 제5황자는 황자 경연의 막이 내린 후 제8황자와 함께 여르 제국 전역을 여행했다고 해. 그 후의 제5황자라고 하면 뛰어난 암면화로 유명해. 그가 남긴 수많은 암면화는 각지에서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풍문으로 들었어. 힘차고 대담하게 조각된 작품도 있고,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을 정도로 섬세한, 암석을 사용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작품도 있다고 해.
게다가, 제5황자가 옹립된 이후 그 기간 동안 나한각으로부터 물 쓰듯이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도 있어.
일부 작품에서는 금이나 보석으로 만든 안료를 사용했다더라. 그래서 돈에 눈이 먼 인간들에 의해 긁어내져서 이제는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작품도 상당수 있다고 해. 문화적으로도 중요했을 텐데 말이야.
그런 내력이 있는 가운데,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전 제5황자가 세상을 떠났어.
향년 3천 세 전후였다고 해. 황자들은 모두 장수한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꽤나 긴 수명이었겠지.
어쨌든, 전 제5황자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어떤 소문이 열국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어.
말하자면, 전 제5황자가 열국 어딘가에 매장금을 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는 거야.
소문이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그가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는 건 그의 경력이나 남긴 작품을 봐도 분명하니까.
소문을 부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죽으면 당연히 나한각이 재산을 몰수할 거라느니, 작품의 원재료에 다 써버렸다느니, 열국에서 제일 비싼 술을 마시다 보니 빈털터리가 됐다느니, 평생 함께 지낸 화려함을 좋아하는 제8황자의 사치품에 다 써버렸다느니. 특별한 소문이 있던 두 사람이니까 자신들의 화려한 무덤을 짓는 데 다 써버렸다느니, 황궁에 있는 무덤에 같이 묻어버려서 손댈 수 없다느니… 매장금이 없다는 소문도, 있다는 소문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존재하고 있어.
그리고, 숨길 것 없이 나도 제5황자의 매장금의 존재를 어느 정도 믿고 찾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넘치도록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일까?
불확실한 소문에 휩쓸려 근처 동굴을 탐험하는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워. 동시에, 뭐, 손에 넣고 나서 천천히 음미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해.
물론, 매장금 같은 게 정말로 있다면 말이야.
나를 이 길로 이끈 장본인 – 이 이야기를 가져온 녀석과는 방금 전에 헤어져 버렸어.
어제, 그 녀석은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열변을 토했지.
그 유명한 전 5황자의 암면화를 발견했다고. 그러니까 매장금도 틀림없이 그 동굴에 있을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어. 전 5황자가 죽은 지 대체 몇 년이나 지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 5황자가 살아있을 때부터 암면화는 다 발견됐고, 미발굴 암면화의 존재 같은 건 절망적이라고. 내 그 말에, 상대는 콧방귀를 뀌며 잘난 체하며 웃더라고. 자기가 발견했으니 당연히 미발굴이었겠지 하고 말이야.
그런 게 있다면 놀랍겠어. 전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뭔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넘어갔어. 그럼, 그 세기의 대발견인 전 5황자의 암면화를 꼭 보여줘 봐.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수십 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녀석이 나를 암면화 앞으로 안내했어. 동굴 입구는 나무가 우거진 작은 언덕에 있었고, 평소엔 아이들의 장난터였지. 그리 높지 않은 동굴 안은 어른 한 명이 겨우 서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어. 그 동굴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안쪽으로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지. 아이들은 들어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깊이 들어온 적이 없었을 거야. 점점 천장이 낮아지고 있었어.
나무와 흙 냄새가 서서히 바다 냄새로 바뀌어 갔지. 횃불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심연이 바로 옆에 있었어. 천장이 조금 높아진 곳에서 그 녀석이 발을 멈췄어. 동굴 안의 찬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작은 공간에 확실히 【암면화】가 있었어. 하지만 2척도 안 되는 꽤 작은 작품이었지. 그려진 것은 어둠 때문인지 더욱 추상적이고 잘 모르겠어. 사람도 아니고 생물도 아니고 정물도 아닌 것 같아. 뭔가 세로로 날카롭게 솟아오르는 선 같은 것과 연기인지 구름인지 안개인지 그런 것이 그려져 있는 것 같긴 한데… 횃불을 가까이 대고 눈을 찌푸리며 만져봤지만, 거친 바위 감촉만 느껴질 뿐 여전히 알 수가 없었어.
애초에 나는 전 5황자의 암면화를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이게 가치 있는 암면화인지, 무명 작가의 암면화인지, 아니면 전 5황자가 남긴 암면화인지 전혀 감이 안 와. 내 의문에 그 녀석은 틀림없이 전 5황자의 암면화라고 단언했어. 돈에 눈이 멀어 정신이라도 나간 건가. 근거는 그저 그 직감이라는 것뿐인 것 같았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나에게 업을 끼친 그 녀석은 믿지 않으면 돌아가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떠나 앞으로 가버렸어. 남겨진 나는 그 녀석의 뒤를 쫓을까, 돌아갈까, 잠시 암면화를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뒤를 쫓기로 결심했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횃불을 한 손에 들고 동굴을 혼자 헤매게 됐어.
동굴은 여전히 깊고 좁아지고 있었어.
그와 나 모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싫은 땀이 나. 냉기로 식어서 더욱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어.
없을지도 모르는 매장금을 찾다가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살아서 돌아가는 게 먼저겠지. 그를 찾아내서 함께 돌아가자.
길은 중간에 두 갈래로 갈라졌어. 나는 왼쪽을 선택해 나아가다가 잠시 후 놓치기 쉬운 옆길을 발견했지. 매장금을 숨긴다면 이런 길일까? 그 옆길로 나아갔지만 앞서 가는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다른 길을 선택한 걸까?
나아가야 할까 돌아가야 할까…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일까? 단 하나의 판단이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했어.
뚝, 뚝 물방울 소리가 들려. 귀에 거슬리는 그 소리, 횃불의 타닥타닥 터지는 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 어느새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걸어가고 있었어.
이끌리듯… 이라니, 스스로에게 웃음이 나와. 아까 그의 【직감】을 비웃은 게 부끄러울 정도로 말이야.
횃불 끝이 종말처럼 흔들리더니 희미한 연기를 남기고 꺼져버렸어. 어둠이 몸을 감싸네. 불안을 느낄 만한 상황이지만, 마음은 고요해.
물론 등에 짊어진 큰 짐 안에 횃불 같은 약간의 준비물은 있지.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오감이 예민해져 있어.
발바닥의 감각, 벽을 더듬는 손바닥의 감각을 의지해 나아가. 이제는 차가운 소금 냄새마저 동료 같아.
나는 기분 좋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아갔어. 지금은 내 존재마저 어둠에 동화되는 게 기분 좋아.
그런 기분 좋음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는데, 문득 눈을 찌르는 자극을 느꼈지.
“와…”
어린아이 한 명이 걸어가기엔 충분하지만, 어른의 몸으로는 꽤나 힘든 이 길을 지나 이렇게 큰 동굴이 있을 줄이야.
내가 감탄한 건 그 넓이뿐만이 아니야.
눈앞에 천국이나, 아니면 신계라고 생각될 만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거든.
그 벽면 전체가 마치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처럼 조각되어 있었어. 바람에 흔들리는 향기로운 풀, 균일한 파문에 일렁이는 맑은 수면, 세 개의 달, 깊은 바다. 그 모든 것이 눈에 박히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 눈을 뗄 수 없었던 건 긴 머리의 인물을 묘사한 조각이야.
암면화인데도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비단처럼 아름다워. 의지가 강한 눈동자, 지금이라도 입을 크게 벌려 말을 할 것 같은 입술.
마치 살아있는 채로 갇힌 것처럼 말이야.
아, 그 녀석이 말한 게 맞았어. 이게 전 5황자의 암면화가 아니면 뭐겠어.
이런 대작이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남아있다니.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을 비볐지. 그래, 난 갑자기 햇빛을 느꼈던 거야.
천장에 있는 무수한 작은 구멍들로 스며드는 빛에 비춰진 상은 아름다웠어. 다시 바라봐. 신의 상일까? 아니, 신만큼 멀지 않고, 가깝게 느껴지는 존재 같기도 해. 더 가까이서 보고 싶어 걸음을 옮겼어. 만져도 될까?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상에 손을 댔어. 내 키로는 상의 어깨에도 손이 닿지 않았어. 그래서 내 등을 상에 기대고 눈을 감았지. 두근두근 소리가 나. 이게 이 사람의 심장 소리였으면 좋겠다…
올려다봐도 역시 아름답고,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길 것 같았어.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봤지.
눈에 띈 건 암석으로 만든 상자였어. 마치 석관 같아.
이럴 때, 안에 들어있는 건 정해져 있지 않을까?
즉, 시체나 금은보화다.
난 내기를 걸었어. 전 5황자가 숨긴다면, 그건—
“매장금에 틀림없어”
그렇지 않겠어? 관에 비해서 그 수가 너무 많잖아.
난 석궤에 손을 댔어. 엄청 무겁네…
작은 체구가 원망스러워. 힘이 충분히 부족해서 뚜껑을 조금씩 밀었지. 3분의 1 정도 밀었을 때, 드디어 안이 확인될 것 같아.
난 들뜬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석궤 안을 들여다봤어.
석궤는 금괴로 가득 차 있었어. 그 중 하나를 손에 들었지. 무거워. 금이란 게 이렇게 무거운 거였나.
균일하고 재미없는 금괴를 돌려놓고, 다음 석궤를 열었어. 이쪽은 보석이나 장식품이 정성스럽게, 하지만 넘칠 정도로 담겨 있었지. 전 5황자가 남긴 것답게, 보기만 해도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은 값어치 있는 물건 같아.
대단해, 대단해, 대단해—
이런 석궤의 양, 혼자서는 도저히 다 열어서 확인할 수 없겠어. 그래, 이야기를 가져온 당사자는 어디에— 잊은 건 아니지만,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 그때,
“야! 네가 왜 먼저 들어와 있는 거야!”
아, 익숙한, 기다리고 있던 목소리였어.
난 돌아서서 그를 봤어. 그도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원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있었지. 평소라면 욕설이 더 거세게 날아올 법도 한데, 역시 그도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았어.
그는 가끔 보이는— 나이에 맞는 아이다운 순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어.
난 그런 그를 향해 있는 힘껏 외쳤어.
“초란아, 찾았어! 전 5황자의 매장금을 발견했다고!”
난 석궤 안에서 가장 예쁜 귀걸이를 들어 올리며 그를 불렀어.
역시 난 운이 좋다고 마음속으로 잊지 않고 덧붙였지.
“뭐라고⁉ 젠장, 야, 그게 누구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거지, 해언!”
초란은 우연히도 전 5황자와 같은 내 이름을 불렀어.
“당연히 알고 있지”
초란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이런 발견은 할 수 없었겠지 하고 뻔뻔스럽게 말하고 나서 어깨를 으쓱했어.
난 다시 한 번 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지, 아, 친근감이 느껴지는 이 상이 어딘가 초란을 닮았구나 하고 말이야.
Fin.